[김형배]의 한말글 일깨우기(705): 가로와 세로
원래 영어 로마자는 가로쓰기를 하고, 한문 한자는 세로쓰기를 합니다. 한글은 초기에는 세로쓰기를 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가로쓰기를 합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세로쓰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가로와 세로 문화.
지금은 대부분 한글로 가로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오랜 세로문화의 영향인지 ‘가로’라는 말이 들어간 말에는 대체로 부정의 의미를 띄고 있습니다.
가로거치다: 앞에서 거치적거려 방해가 되다. ¶ 그 군사가 눈을 부둥켜 쥐려다가 댓가지가 손에 가로거치니 입을 악물고 댓가지를 뽑아 버렸다.≪홍명희, 임꺽정≫
가로놓이다: 일의 진행이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장애가 앞에 버티고 있다. ¶ 우리의 앞길에는 적지 않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다.
가로막다: 말이나 행동, 일 따위를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막다. ¶ 그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가로막히다: 「2」 말이나 행동, 일 따위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방해받거나 막히다. ‘가로막다’의 피동사. ¶ 그의 이민 정책은 법원의 판결로 가로막힌 바 있다.
가로맡다: 「1」 남의 할 일을 가로채서 맡거나 대신해서 맡다. ¶ 왜 네가 가로맡아서 전화를 받느냐고 노골적으로 못마땅해한다.≪현진건, 적도≫ 「2」 남의 일에 참견하다.
가로새다: 「1」 중간에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다. ¶ 장교들이 배 타는 사람 기찰하는 것을 유복이가 멀찍이서 바라보고 장교들 눈에 뜨이기 전에 가로새어서 미타산으로 들어갔다.≪홍명희, 임꺽정≫
「2」 어떤 내용이나 비밀이 밖으로 알려지다. ¶ 그는 자기의 행적이 가로새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3」 이야기 따위가 다른 방향으로 빗나가다. ¶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곧잘 가로새어 자식 자랑을 한다.
가로젓다: 거절하거나 부정하거나 의심스럽다는 뜻으로 고개나 손을 가로 방향으로 젓다. ¶ 그는 말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 형은 대답 대신 손을 가로저었다.
가로차다: 「1」 옆에서 갑자기 쳐서 빼앗다.=가로채다.
「2」 남의 것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빼앗다.=가로채다. ¶ 그들은 공금을 가로차 가지고 달아났다.
「3」 남이 말하는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못 하게 하다.=가로채다. ¶ 그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그들의 이야기를 가로차고 나섰다.
가로채다: 「1」 옆에서 갑자기 쳐서 빼앗다. ≒가로차다. ¶ 오토바이를 탄 날치기가 행인의 손가방을 가로채서 달아났다.
「2」 남의 것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빼앗다. ≒가로차다. ¶ 문서를 위조하여 남의 땅을 가로챘다. / 실제보다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공사비를 가로채 온 일당이 적발되었다.
「3」 남이 말하는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못 하게 하다. ≒가로차다. ¶ 남의 말을 가로채면 안 된다. / 김 선달은 가장 자기가 그 속을 잘 아는 것처럼 묻는 말을 가로챈다.≪이기영, 고향≫
가로타다: 「3」 남의 일을 중간에서 당치 않게 가로맡아 나서다. ¶ 가로타고 나설 문제도 아니기에 먹던 떡 접시를 앞에 놓고 밖에 귀만 기울이고 앉았다.≪염상섭, 이십 대에 들어서≫
가로흔들다: 손이나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응하지 않거나 부정하다. ¶ 함께 장사를 해 보자는 내 말에 그 친구는 고개를 가로흔들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로막고, 가로채고, 가로흔드는 것 따위가 모두 방해하고 끼어들고 부정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가로’는 한자로는 ‘횡(橫)’에 해당합니다. 한자말에 ‘횡’이 들어간 말 또한 ‘가로’가 들어간 말처럼 대체로 부정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횡담(橫談): 함부로 지껄임. 또는 그런 말.
횡득(橫得): 뜻밖에 이익을 얻음.
횡듣다(橫듣다): 무슨 말을 헛듣거나 잘못 듣다.
횡렴(橫斂): 무법(無法)하게 조세를 거두어들임.
횡령(橫領): 공금이나 남의 재물을 불법으로 차지하여 가짐.
횡류(橫流): 「1」 물 따위가 제 곬을 흐르지 아니하고 옆으로 꿰져 흐름.
「2」 물품을 정당한 경로를 밟지 아니하고 전매(轉賣)함.
횡리(橫罹): 뜻밖에 재앙을 당함.
횡문(橫聞): 바로 듣지 못하고 잘못 들음.
횡보다(橫보다):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잘못 보다.
횡사(橫死): 뜻밖의 재앙으로 죽음.
횡설수설(橫說竪說): 조리가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임.
횡액(橫厄): 뜻밖에 닥쳐오는 불행.=횡래지액.
횡요(橫夭): 젊은 나이에 죽음.=요절
횡재(橫災): 뜻밖에 재난을 당함. 또는 그 재난.
횡재(橫財): 뜻밖에 재물을 얻음. 또는 그 재물.
횡출(橫出): 바르지 못한 짓이나 빗나간 행동을 함.
횡침(橫侵): 함부로 쳐들어감.
횡포(橫暴): 제멋대로 굴며 몹시 난폭함.
횡행(橫行):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함.
횡령, 횡사, 횡재... 이처럼 ‘횡(橫)’이 들어간 말은 ‘함부로, 제멋대로, 뜻밖에, 바르지 않게’ 등 부정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잘 안 쓰는 말이지만 그 밖에도 ‘횡’이 들어가서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세로나 종(縱)에는 부정의 뜻이 없는데, 이처럼 ‘가로’나 ‘횡(橫)’이 들어간 말이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말이 오랫동안 세로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거나 가로와 세로는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야 합니다.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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